중세 초기의 수학에 대해서는 암흑시대라고 표현해도 틀리지 않다고 할 수 있다. 재정을 다루기 위해 산술을 사용하고 발전시키는 상인들과 사업가들의 수가 줄어들고, 학문에 전념하기 위한 시간과 기회를 가진 사람들의 수가 더 적어지는가 하면, 학문에 대한 지원보다는 통치자들의 자금과 시간을 보다 절실히 요구하면서 유럽은 교양 및 책의 활용, 교육 수준이 척박한 시기가 이어지고 있었다.
목차
1. 톨레도의 번역 학교
2. 알폰소 천문표
3. 오래된 흑마술
1. 톨레도의 번역 학교
기독교는 물론, 유대교 및 무슬림 학자들은 아랍어에서 라틴어에 이르기까지 함께 책을 번역했는데, 톨레도는 이런 새로운 번역 운동의 중심지가 되었다. 1085년 톨레도는 레온-카스티야의 기독교 왕 알폰소 6세에 의해 함락되었지만, 대규모의 도서관들과 함께 각 종교들 사이에 유지되어오던 협동적인 학문의 전통이 지속되었으며, 톨레도 번역 학교는 유럽에 수학적 시직을 전파하는 주요 통로의 역할을 했다.
톨레도는 인도-아라비아 숫자들 유럽에 전파하는 데 영향을 미쳤으며, 알 콰리즈미의 책 ‘인도 수학에 의한 계산법’을 라틴어로 번역하여 편찬한 것도 바로 이곳 톨레도였다.
인도-아라비아 숫자는 유럽에서 톨레도 수자로 알려졌으며 용어 ‘zero’는 아랍어로 비었다는 뜻의 ‘sifr’를 카스티야인들이 라틴어로 번역한 ‘zephirum’을 사용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졌다.
2. 알폰소 천문표
현왕 알폰소의 후원 아래 톨레도 학교에서 만들어낸 것 중 가장 많이 알려진 것이 천체들의 좌표를 표로 정리한 알폰소 천문표다. 이는 기독교 국가에 가장 널리 보급된 천문표가 되었으며, 1551년까지 꾸준히 사용되었다.
하지만 이전에 만들어진 모든 천문표와 마찬가지로, 지구가 중심에 있고 천구의 천체들이 지구 주변을 회전하는 지구 중심의 정확하지 않은 우주 모형의 구조를 따름으로써 알폰소 천문표의 정확성과 유용성이 제한되었다.
코페르니쿠스의 태양중심설을 토대로 하여 최초의 천문표를 편집한 것은 1551년이 되어서였다. 덴마크 천문학자 튀코 브라해와 독일의 천문학자이자 수학자인 요하네스 케플러가 작성한 루돌프 천문표는 1627년에 편집되었다. 이들 천문표는 태양 중심 원리와 케플러의 타원궤도 모형을 통합하여 편집한 까닭에 훨씬 더 정확해졌다.
3. 오래된 흑마술
13세기 유럽에서는 ‘톨레도의 과학’이라는 말이 흑마술과 동의어로 받아들여졌다. 그것은 번역 학교에서 출판되는 책들이 점성술을 포함한 데다 수학과 관련 있었기 때문에 일종의 지적 과학기술이 상당히 발전하여 많은 사람들이 마술로 잘못 생각하기도 했다. 때문에 동시대의 작가들은 번역 학교를 마술과 결부시켰다. 독일의 하이스터바흐 수도원의 케사르는 톨레도에서 두 명의 슈바벤인이 ‘마법사의 기술’에 관해 연구했다는 내용의 이야기를 했다.
한편 현왕 알폰소의 조카였던 돈 후안 마누엘은 마법의 기술을 배우고 싶어 했으며 그 분야에서 최고라는 톨메토의 일란 이야기를 듣고 가공 인물 산티아고의 데안에 대해 모사했다. 수학의 마법 같은 특징에 따른 이런 의심은 중세 유럽에서 새로운 아이디어와 기술들이 더디게 전파되는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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